자동 견적·비용 산출 시스템이 위협하는 견적서 담당자 일자리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견적 업무의 전통적 가치
나는 예전부터 건설, 제조, 광고 기획사 등 다양한 업종에서 견적 담당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그들은 단순히 계산기만 두드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프로젝트 규모를 분석하고, 각 공정별 단가를 따져보며, 예상 외 변수까지 고려해 전체 비용을 산출해내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실제로 견적 담당자가 뽑아낸 한 장짜리 견적서가 기업 간 신뢰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과거에는 숙련된 담당자가 오랫동안 데이터를 쌓아가며 그만의 노하우로 견적을 뽑는 일이 무척 중요했다. 나는 이런 과정을 보며 견적 업무는 경험과 직관이 결합된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자동 견적·비용 산출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 직무가 위협받고 있다.
자동 견적 솔루션이 빠르게 대체하는 단순 계산 업무
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IT 솔루션 회사들이 자동 견적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건설업에서는 BIM(빌딩정보모델링) 데이터와 연동해 자재 수량과 공정을 자동 산출하고, 즉시 견적을 뽑아내는 시스템이 이미 상용화됐다. 제조업에서도 ERP와 연계된 자동 견적 모듈이 재고·납기·단가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비용을 계산해준다. 나는 한 중소 가전 제조사에서 이런 자동 견적 솔루션을 도입하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있다. 과거에는 담당자가 2~3일간 각 부품 단가를 확인하며 손수 작성하던 견적서를 이제는 클릭 몇 번 만에 출력했다. 이런 변화는 단순 반복 계산이나 표준화된 조건에서 이루어지던 견적 업무를 빠르게 AI와 시스템으로 대체하고 있다.
견적 담당자 일자리 감소와 숙련도 무력화
문제는 자동화가 가져온 효율성 뒤에 숨어 있는 인력 구조의 변화다. 나는 한 중견 건설사의 회계팀에서 “이제 견적 담당자를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를 묻자 “시스템이 다 뽑아주는데 굳이 사람을 더 둘 필요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특히 입사 초기 견적 보조 업무를 하며 단가 체계와 공정 흐름을 익히던 주니어들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그 과정을 통해 차근차근 전문성을 쌓아 견적 전문가로 성장했지만, 이제 그 단계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나는 이 구조가 무척 위험하다고 느낀다. 자동 견적 시스템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예상치 못한 시장 변수나 프로젝트 특이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숙련도가 무너진 조직은 이를 잡아낼 사람이 없다. 결국 자동화는 단순히 일자리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조직 내 노하우 축적 경로 자체를 사라지게 만든다.
자동화 속에서도 사람만 할 수 있는 해석과 조율이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견적 담당자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자동 견적 시스템이 보편화될수록 사람이 맡아야 할 영역이 더 분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자재 단가와 공정이더라도, 특정 지역 규제나 고객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에 따라 프로젝트 총액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담당자가 고객과 협상하며 예산을 조율하고, 리스크를 검토해 조건을 다시 설계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실제로 나는 한 광고 기획사에서 “자동 견적으로 뽑은 금액은 1억인데, 고객과의 관계나 시장 흐름을 감안해 결국 9천만 원에 계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국 수치만 빠르게 뽑아내는 일은 AI가 대신할지 몰라도, 그 뒤에서 전체 프로젝트를 이끌고 고객과 신뢰를 쌓는 일은 앞으로도 사람이 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견적 담당자라는 직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