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디자이너는 퇴출? 살아남는 디자이너의 조건
디자이너의 위기, 단순 작업은 이미 기계가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처럼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 사실 이 말을 조금 바꿔 말하면, ‘단순히 예쁘게 그리는 사람’은 더 이상 디자이너로서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내가 여러 기업과 프리랜서 현장을 오가며 느낀 것은, 기업들이 단순히 색상을 고르고, 도형을 배치하는 일을 디자이너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일들은 템플릿, 자동화 프로그램, 심지어 AI 이미지 생성기가 상당 부분 대체해버렸다. 과거라면 배너 하나를 만들기 위해도 포토샵을 열고 몇 시간을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캔바 같은 툴을 통해 몇 분 만에 결과물을 만든다.
이 상황에서 기업은 ‘단순히 도구를 다루는 사람’에게 급여를 지급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단순한 실행자는 이미 플랫폼과 프로그램이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현실은 ‘단순 디자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이제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앞으로 더 큰 생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디자이너만 살아남는다
내가 수십 건의 프로젝트에서 느낀 결론은 하나다. 디자이너가 단순히 지시를 받아 시각화만 한다면 금세 대체된다. 반면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여전히 시장에서 귀중한 인력으로 평가받는다. 기업이 디자이너를 찾는 진짜 이유는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스타트업이 앱 UI를 리뉴얼하고 싶어한다고 가정해보자. 단순히 예쁜 화면을 원할까? 아니다. 사용자가 어떤 화면에서 이탈하는지, 버튼을 어떻게 배치해야 전환율이 올라갈지를 고민해줄 전문가를 원한다.
여기서 디자이너는 단순히 디자인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용자 행동을 분석하고, UX 흐름을 설계하며, 브랜드 메시지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녹일지를 총체적으로 고민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로 내가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린 디자인 예쁜 사람은 많아서 뽑고 싶지 않아요. 우리 문제를 같이 고민해줄 디자이너가 필요해요.” 앞으로 살아남는 디자이너는 이런 관점을 스스로 몸에 새긴 사람일 것이다.
데이터를 읽고 해석할 줄 아는 디자이너가 강하다
많은 디자이너가 디자인 툴만 배우고, 포트폴리오를 예쁘게 꾸미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진짜 높은 연봉을 받는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데이터를 이해하고, 분석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내가 최근 참여했던 서비스 리디자인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GA, 앱 애널리틱스, 히트맵 데이터를 함께 보며 ‘어디에서 사용자가 이탈하는지’, ‘어떤 요소가 클릭되지 않는지’를 파악하고 디자인했다. 단순히 UI를 화려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개선을 하는 것이 진짜 디자이너의 일이다.
또한 데이터 해석 능력은 디자이너가 PM, 개발자, 마케터와 협업할 때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 “저는 이 색이 예쁜 것 같아요.”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지만, “저 색은 CTA 클릭률을 3% 떨어뜨린 데이터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못한다. 데이터를 읽을 줄 아는 디자이너는 단순한 아트워크 생산자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방향을 결정짓는 의사결정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이 능력이 앞으로 디자이너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와 사용자 경험까지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 디자이너는 단순히 화면만 예쁘게 꾸미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브랜드의 방향성과 철학을 이해하고, 이를 사용자 경험 전반에 어떻게 녹여낼지를 설계해야 한다. 나는 이를 ‘브랜드 UX 설계자’라고 부르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떤 카페가 프리미엄 커피를 판매하면서도 젊은 고객층을 공략하고 싶어한다면, 메뉴판 디자인, 테이블 세팅, 심지어 SNS 피드 톤앤매너까지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포토샵 잘 다루는 사람은 절대로 못 한다. 브랜드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사용자 심리를 분석하며, 각 접점을 일관되게 디자인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앞으로 살아남는 디자이너의 조건은 명확하다. 첫째,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데이터를 해석해 디자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브랜드 경험 전반을 설계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꾸준히 연습하고 몸에 익힌다면, AI나 자동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당신은 언제나 필요한 디자이너로 남게 될 것이다.